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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레딕 :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 데뷔 시즌부터 플레이오프에 못올라가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올해도 또한 저는 플레이오프에 올라갈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죠. 그 이유 중 하나인 우리 팀의 슈퍼스타 조엘 엠비드를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둘이서 편하게 대화한 내용이지만 편의상 존댓말로 번역)


1. 트롤링

레딕: 와줘서 고맙습니다, 조엘. 많은 사람들이 이 팟캐스트를 듣고 싶어했어요. 당신은 코트 위에서 뿐 아니라 소셜 미디어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으니까요.(웃음) 일단 제가 조사해온 것들 부터 물어보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때 이 위치 태그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팬 사진과 함께 '프로세스'라는 이름의 체육관. 하산 화이트사이드의 사진과 '바베큐 치킨'이라는 식당. 밀워키 벅스전 사진과 '똥구멍'이라는 이름의 거리. 론조 볼의 사진과 함께 '라바 방귀'라는 이름의 이란 도시. 이런 것들은 대체 뭔 생각을 하면서 설정한 건가요?(웃음)

엠비드: 그때 그때 다르죠. 저는 항상 그냥 경기장에 나가서 그냥 농구를 즐기고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보통 다른 친구들이 저에게 뭔가 시비를 거는 일이 많죠. 더 피지컬하게 플레이한다던가, 트래쉬토킹을 한다던가 하면서요. 그런 것들을 당하면 제 경기력이 올라가고, 경기를 꼭 이겨서 나중에 걔네들을 소셜 미디어에서 혼내주고 싶어져요. 저는 이게 농구의 재미라고 생각하는데, 누군가가 멘탈이 약해서 이런 것 때문에 기분이 상하거나 상처받는다면,  그걸 제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죠. 그건 제 탓이 아니니까요.


음..일단 화이트사이드 일은, 올해 프리시즌의 경기였어요. 마이애미랑 경기하고 있는데, 얘가 너무 피지컬하게 하고 저한테 시비를 걸더라구요. 그러다가 1쿼터 2분만에 저한테 파울을 3개나 했죠. 그래서 제가 마이애미 감독님한테 가서 쟤 좀 빨리 교체시키라고, 안그러면 5분 안에 퇴장당할거라고 얘기했어요. 근데 이친구가 이것땜에 기분이 상했는지 경기 끝나고 트위터에서 뭐라고 했다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한마디 대꾸해줬던 거고, 우리가 경기를 이겼기 때문에 샤킬 오닐의 '바베큐 치킨'을 인용해서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죠.



그리고.. 아, 라바 볼이요? 그건 그냥 순수하게 그 지명이 웃겨서 인용한 거에요. 볼 가족에 대해서 딱히 악감정은 없어요, 저는 오히려 그들의 팬입니다. 그들이 하는걸 옆에서 보면 재미있잖아요. 그때는 그냥 라바 볼이 먼저 제가 농구를 할 줄 모른다고 디스했고, 저는 46득점을 올린 다음에 제가 사실은 농구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기 위해 그 사진을 올렸던 거에요.(웃음)


레딕: 누군가 시비를 걸면, 그걸 머릿속에 기억해 뒀다가 꼭 갚아주려고 하네요.(웃음) 최근에는 ESPN의 제일런 로즈와의 사건이 있었는데요.

엠비드: 아, 그거요. 예전 인터뷰에서 제 몸상태가 69%라고 말한 것에 대해 제일런이 제가 프로의식이 부족하다고 비판했어요. 그래서 다음 인터뷰에서 그를 상대로 81득점을 기록한 코비를 기리기 위해 제 몸 상태가 81%라고 대답했죠.

레딕: 누가 시비를 걸던 맞서 싸우는 데에 한계가 없는 것 같아요.

엠비드: 물론이죠, 누가 건드린다면 반격을 해 줘야죠. 사실 이번 일은 저는 잘못 없어요, 저는 그냥 69라는 아무 숫자나 얘기한 것 뿐인데, 사람들이 이걸 가지고 무슨 불건전한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웃음)


레딕: '소셜 미디어 트롤링'이라는 문구를 들어본적 있나요? 사실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릴 때, 다른 사람들을 놀릴 의도가 전혀 없다고는 얘기할 수 없을텐데요. 인정하시나요?

엠비드: 인정합니다. 사실 소셜미디어에서는 주로 팬들이 선수들을 놀리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그 반대로 하는 것 뿐이죠. 못할 거 없잖아요?(웃음)

사실 제가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할 때는, 포스팅을 하나 올리고 나면 그냥 끝이에요, 올려 놓고 달리는 댓글은 전혀 안봐요. 게시물 하나당 몇천개씩 댓글이 달리는데, 어떻게 다 보겠어요? 물론 가끔 하우스 오브 하이라이트나 블리처 리포트, 또는 섹시한 여자 계정이 있으면 다른 인스타도 들어가 보기는 해요. 


2. 카메룬에서 NBA로


레딕: 시계를 8년 전으로 돌려볼까요. 당시에 카메룬에서 유망한 배구선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카메룬의 농구 스타인 룩 음바무테의 농구캠프에 초대받고, 거기서 최후의 5인으로 선정되어 미국으로 넘어오셨죠. 농구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엠비드: 제가 처음으로 시청한 농구 경기는 LA레이커스와 올랜도의 결승전이었어요. 몇년도였더라? (레딕: 2009년이었죠, 제가 그 때 올랜도 선수였습니다.) 아, 그런가요? 또 의도치 않게 트롤링을 했네요.(웃음) 어쨋든 저는 그 당시 코비를 보고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의 화려한 플레이들, 경기의 치열함, 경기장의 뜨거운 분위기, 미디어의 취재 열기 등 모든 것들이 저를 사로잡았죠. 어렸을 때의 저는 말 수가 적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더 매료되었고, 그 때부터 농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는 원래 배구, 축구, 가라데 같은 것들을 했었는데,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했죠. 제가 농구를 시작한지 4개월쯤 되어서 룩 음바무테의 캠프가 열렸죠. 저는 사실 합격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기 때문에, 첫 날에는 캠프에 가지도 않았어요. 근데 둘째날 가보니까 관계자가 갑자기 여권이 있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오, 내가 좀 잘하나보네?' 하는 생각이 들었죠. 캠프에 참가했을 때에도 제가 다른 애들보다 잘한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어요, 근데 신기하게 제가 최후의 5인에 뽑혀서 올스타전 경기를 보러 미국에 가게 되었죠. 사실 그건 다른 애들한테 불공정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레딕: 말씀하셨지만 커리어 초반에는 굉장히 자신감이 없었어요. 심지어 대학 시절에는 감독에게 '나는 재능이 없다, 집에 보내달라'라고까지 얘기했다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그 자신감 없는 아이에서, 지금 '나는 역사상 최고의 빅맨이다'라고 뻔뻔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나요?(웃음)

엠비드: 자신감 문제는 학생 때의 제 커리어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미국에 왔을 때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이었고, 심지어 JV(주니어 바시티, 2군)에서 플레이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전국대회에서 좀 잘 해서 캔자스 대학에 가게 되었는데, 대학에 가니까 애들이 다들 힘이 너무 쎘어요. 제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완전 말라깽이였거든요. 당시에 저는 절대 프로로 가지 못하고, 대학에서만 4,5년동안 플레이할 줄 알았어요. 그래서 코치한테 가서 집에 보내달라고 떼를 썼었죠.


그리곤 많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제 기량이 발전했고, 프로에 드래프트되었죠. 그리고 제 동생이 세상을 떠났어요.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저는 어른이 되었죠. 프로 첫 경기에서 저는 24분만에 20득점을 올렸고, 상대는 뛰어난 수비수인 스티븐 애덤스였어요. 그 경기를 치루고 나서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죠.


레딕: 프로 데뷔전을 하고 나서, 내가 뭔가를 이루어 냈다는 성취감이 들었나요?

엠비드: 아뇨, 사실은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들진 않아요. 저는 아직도 제가 플레이 해놓고 '아니 내가 어떻게 저걸 했지?' 하면서 스스로 놀랄 때가 많아요.(웃음) LA 레이커스전에서 했던 드림쉐이크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죠. 그 플레이를 해 놓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농구를 하면 할 수록 제가 아직 보여줄 것이 한참 남았다는 것, 그리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느껴지죠.


레딕: 언급하신 레이커스전에서 46득점을 했을 때도 뭔가를 이루어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나요?

엠비드: 물론이죠, 그 경기는 딱히 엄청난 순간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저는 그냥 평소처럼 포스트업을 하고, 팀 플레이에 주력했죠. 심지어 경기 중에 제 손이 뜨겁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어요. 무슨 클레이 탐슨이나 스테판 커리처럼 던지면 들어간다 이런 느낌은 전혀 없었고, 그냥 하던대로 했을 뿐이죠. 물론 좋은 경기였지만, 제 커리어에 남을 만한 순간이라고 느끼진 않았습니다.


3. 인간 엠비드

레딕: 많은 사람들은 당신의 활발하고 재밌는 면을 좋아하지만, 당신은 사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면이 있어요. 또한 당신은 필라델피아 팬들에게는 4년간의 기다림의 결과이자, 필라델피아의 "과정"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죠. 이런 것들 때문에 부담감이 느껴지진 않나요?

엠비드: 부담감도 느껴지지만, 저는 이런 것들을 사랑합니다. 제 어깨에 짊어진 것들 때문에 저는 제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매일 최선을 다해서 훈련하죠. 또한 이런 것들이 저에게 있어서 인생의 즐거움입니다. 저는 집에 혼자 있을 때는 그저 먹고, 자고, 비디오게임을 합니다. 누군가가 불러주지 않는다면 저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요. 농구와 농구가 가져다주는 것들이 제 인생의 모든 즐거움의 시작이죠. 농구가 없다면 저는 그저 키만 큰 친구일 뿐입니다.


레딕: 팬들은 당신의 재미있는 면도 좋아하지만, 당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면도 좋아하는데요. 한밤중에 주변이 활짝 트인 코트에서 테니스를 친다던가, 7풋의 키로 필라델피아 길거리에서 조깅을 한다던가요. 또 당신은 지금까지 아무데도 큰 돈을 쓴 적이 없죠. 심지어 차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엠비드: 네, 아직 차는 없어요. 집도 월세로 살고 있죠. 큰 TV를 하나 산 이후에, 다른 건 아무 것도 필요가 없었어요. 아, 최근에 새 마이바흐 컨셉카를 봤는데, 그건 꼭 갖고 싶네요. 2019년이나 2020년에 나온다고 알고 있는데, 그게 아마 제가 처음으로 큰 돈을 쓰는 곳이 될 것 같네요.(레딕: 근데 면허는 있어?) 아뇨, 그건 어떻게든 되겠죠.(웃음)


4. 가족, 그리고 아써 엠비드 재단

레딕: 미국에 처음 왔을 때와, 프로에 드래프트되었지만 경기에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둘 중 어느 시기가 더 힘들었나요?

엠비드: 후자가 더 힘들었죠. 그 때 저는 프로에 오긴 했지만, 재활에 전념하느라 팀과 함께 훈련을 하지 못하고 있었죠. 계속 혼자였는데, 가족을 잃은 슬픔까지 겹쳐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사실 미국에 온 이후 동생을 한 번도 보지 못했었고, 처음에는 동생과 LA에서 만나기로 했었죠. 그런데 제가 동쪽으로 드래프트 되어서 그 비행기를 취소하고, 그냥 제가 카메룬에 가서 만나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안좋은 일이 생겨 동생이 세상을 떠났고, 그건 정말 슬픈 일이었습니다.

(역자: 검색해보았으나 동생의 사망 원인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레딕: 언급하셨지만, 동생의 이름을 따서 아써 엠비드 재단을 만드셨어요. 이 재단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기부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려 주세요.

엠비드: 네, 말씀하신대로 재단 이름은 Arthur Embiid이고, 홈페이지는 EmbiidforCameroon입니다. 저의 목표는 카메룬과 아프리카에 있는 아이들을 돕는 거에요. 사실 저는 군인인 아버지 밑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랐고, 룩 음바무테를 비롯해서 저를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 덕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죠. 하지만 저는 주변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아이들을 정말 많이 봐 왔어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 동생은 비록 어렸지만, 가진 것을 베푸려고 노력하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동생의 이름을 따서 재단의 이름을 지었고, 가능한 한 최대한 많은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레딕: 마음 속의 얘기들을 많이 해줘서 고마워요. 지금까지 조엘 엠비드였습니다.

엠비드: 감사합니다!